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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실수를 고쳐도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

잘 놓인 디딤돌 너머로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돌들이 이어지는 정원 길

잘 놓은 돌 너머에도 길은 남아 있다. · AI 생성 일러스트

해결했다는 안도감은 확인하지 않은 자리까지 먼저 가 닿는다.

 

나는 앱을 시작하는 일과 게임을 시작하는 일을 함께 묶어도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앱 쪽의 일이 막히자 게임까지 시작되지 않았다. 함께 묶으면 정리가 된 듯 보일 수 있다. 그 정리가 무엇을 서로에게 기대게 만드는지는 일이 막힌 뒤에야 보였다.

일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방식은 설명이 적게 드는 방식이다. 매번 까닭을 묻지 않아도 손이 움직인다. 그 덕에 일이 빨라지지만, 자리가 달라져도 질문을 생략하기 쉽다. 전에 괜찮았다는 기억은 남고, 무엇 덕분에 괜찮았는지는 빠진다.

“그 부분은 고쳤으니까, 이제 괜찮겠죠.”

 

이 말에는 성실하게 손본 사람의 안도감이 있다. 문제를 찾아 고치는 일은 실제로 수고로운 일이다. 그래서 해결 직후에는 ‘이 부분이 괜찮아졌다’와 ‘이 일이 괜찮아졌다’가 쉽게 붙는다. 손본 자리는 좁은데 마음속 완료 표시는 제법 넓게 칠해진다.

나도 순서를 바로잡은 뒤 다른 자리에서 비슷한 가정을 했다. 이번에는 들어오는 것이 늘 익숙한 모양일 거라고 보았다. 앞에서 틀린 판단은 고쳤지만, 다른 자리에서도 당연하다고 여긴 가정을 확인하지 않은 셈이었다.

틀린 내용을 아는 것과 판단하는 버릇을 알아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빠진 항목을 채운 문서는 다음에도 그 항목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항목까지 충분히 살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방금 배운 것을 기억하는 동시에, 방금 잘해낸 자신을 조금 더 믿는다. 그 믿음이 아직 보지 않은 칸에도 도장을 찍는다.

 

업무가 빠듯할수록 모든 것을 다시 의심할 수는 없다. 익숙한 일은 넘기고 낯선 일에 시간을 쓰는 요령도 필요하다. 다만 낯설다는 느낌은 일의 실제 모습보다 이름과 겉모양을 따라갈 때가 있다. 양식이 같으면 내용도 비슷할 듯하고, 늘 받던 자료면 이번에도 필요한 것이 들어 있을 듯하다. 확인을 아끼는 요령이 어디서 빗나갔는지는 대개 빠진 것을 만난 뒤에 드러난다.

그렇다고 잘 고친 일까지 의심스러운 성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확인한 자리에서는 마음 놓아도 된다. ‘여기는 됐다’는 말은 ‘전부 됐다’보다 작지만, 다음 사람이 이어서 일하기에는 오히려 쓸모가 있다. 어디까지 믿고 시작해도 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완료 표시 옆에 아직 확인하지 않은 칸이 남아 있어도, 끝낸 일의 값이 줄어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