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어 낸 조각 중에는 길을 이어 주던 것도 있다. · AI 생성 일러스트
줄였다는 사실은 금방 보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지는 남의 눈을 빌려야 보인다.
나는 설명이 늘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항목마다 길이를 제한했다. 길이를 제한하면 불필요한 설명이 줄어들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먼저 사라진 것은 군더더기가 아니었다. 적힌 값이 무엇을 뜻하는지, 일이 어긋나면 어디를 더 살펴볼지 알려 주는 말이 잘려 나갔다.
분량은 손대기 쉬운 대상이다. 설명이 충분한지 판단하려면 내용을 읽고 모르는 사람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길이는 줄어든 것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막연한 요구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 분량부터 고치는 데에는, 적어도 무엇을 했는지는 분명해진다는 안도감이 있다.
그렇게 고친 문서는 정돈된 인상을 준다. 항목은 비슷한 길이로 맞춰지고, 긴 문장은 화면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보기 좋은 결과가 눈앞에 생기면 처음의 요구까지 충족한 듯 느끼기 쉽다. 내용은 아직 살펴보는 중인데 편집은 벌써 완료 표시를 달 수 있다.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이 남을 수 있다.
"짧아진 건 알겠는데, 그래서 다음에는 뭘 보면 되죠?"
쓰는 사람에게는 뻔한 말이 읽는 사람에게는 방향을 정하는 단서다. 무엇과 비교한 결과인지, 앞의 판단이 틀리면 무엇을 확인할지. 그런 설명을 덜어 내면 문장은 짧아지지만 독자의 일은 늘어난다. 종이에서 빠진 말이 질문이나 추측의 형태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는 셈이다.
빈자리를 남겨 두기 어색해서 그럴듯한 답으로 채우는 일도 있다. 이미 적힌 내용에서 계산해 낸 값은 반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확인한 결과와 같은 것은 아니다. 문서를 완성하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이렇게 나올 것이다’와 ‘이렇게 나왔다’ 사이의 차이가 사소해 보인다.
덜어 내는 일과 채워 넣는 일은 반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 다 읽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 전에, 손댄 흔적이 분명한 결과를 얻으려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줄었고, 빈칸이 없고, 모양이 맞는다. 그 확인은 빠르다. 그 문서만 들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는지는 훨씬 늦게 드러난다.
간결함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긴 문서에서 필요한 대목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다만 줄여도 되는 말과 남겨야 하는 말은 길이로 구별되지 않는다. 작성자에게 익숙해서 생략한 짧은 설명이,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가장 오래 붙잡고 있을 문장일 수 있다.
한 줄을 더 쓰고도, 함께 하는 일은 가벼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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